차와 가까워지려면? 물 온도는 80도… 1~2분간 우려야 ‘제 맛’ (주간조선 2005-04-12 15:26) |
차와 가까워지려면 다음의 일을 명심할 일이다. 첫째, 유자 우린 물, 매실 우린 물, 칡 우린 물, 두충 우린 물, 연꽃 우린 물, 국화 우린 물, 댓잎 우린 물 따위에다가 ‘-차’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르지 말 일이다.
둘째, 차 마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의 근엄한 행다법(行茶法), 혹은 차 내는 법(차 우려 마시는 방법)에 주눅들지 않아야 한다. 한복 곱게 차려입고 조심스럽게 운신하고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찻잔 받쳐 들고 새로 시집 온 새각시처럼 조심스럽게 마시는 행다법이라는 것은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것이다.
차 마시는 법을 몰라 마시지 못하는 것은 마치 양말 신는 법을 몰라 못 신고, 밥 먹는 법 몰라 못 먹는다는 말하고 같다. 차는 편하게 마시는 것이 가장 잘 마시는 것이다. ‘차와 선은 한 가지’(茶禪一切)라는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선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순리다. 순리란 말은 억지의 반대말 아닌가. 가장 편한 삶 자체가 순리인 것이다. 차를 어렵고 불편한 형식에 얽매여 마시는 것은 차를 잘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한 여고생이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녹차를 거듭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여고생이 마신 ‘녹차’를 차로 여기지 말 일이다. 자그마한 여과성 봉지에 담긴 녹차라는 것은 다방이나 식당 같은 데서 뜨거운 물잔에 한 개씩 넣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차 가운데서 제일 하급의 것이다. 이미 단단하게 자라버린 찻잎을 따다가 굽거나 쪄서 만든 가루에 현미가루를 섞어 봉지에 넣은, 일종의 다량 생산한 공산품이다. 지금 내가 말하려 하는 차는 봄철, 곡우와 하지를 전후해서 삼지창처럼 올라오는 부드러운 잎을 조심스럽게 따서 아홉 번 이상 덖어 말린 양질의 것이다.
봉지 열면 한 달 안에 다 마셔야
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발효한 홍차이고, 다른 하나는 덖거나 찐 차다. 한국에서는 덖은 차를 주로 생산하고, 일본에서는 찐 차를 주로 생산한다. 한국 덖음차는 열 번까지 우려마실 수 있는데 일본 차는 네 번 이상 우려 마실 수가 없다.
중국차는 오래 묵어 변질된 차가 많다. 중국의 기이하고 진한 향기와 맛을 내는 차를 선호할 일이 아니다. 차는 역시 이 땅에서 난 차가 우리 체질에 가장 알맞다.
오랫동안 차를 마셔본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것이 좋은 차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우선은 시중에서 중간쯤의 가격인 것을 골라 시음해볼 일이다. 가격은 수제품인 경우 몇 십만원 하는 것에서 몇 만원 하는 것이 있다. 다량 생산하는 공장제품은 좀더 싸다.
제다(製茶)하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배릿한 맛과 향을 내려 하는 사람이 있고, 더 많이 덖어 고소한 맛과 향을 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배릿한 향을 살리려면 거짓말처럼 풋내가 나고, 고소한 맛을 내려하면 약간 탄내가 나는 듯싶다.
모든 차는 사가지고 와서 한번 봉지를 트면 한 달 안에 다 마셔버려야 한다. 습기에 일단 노출되면 변질되기 시작한다. 선물 받은 고급한 차를 아깝다고 두 달 석 달 묵혀놓으면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슬게 된다. 변질된 차는 몸에 해롭다.
사무실에서도 다원(茶園)의 향취를
커피든 차든 적당하게 마시면 약이지만 많이 마시면 독이다. 한 사람이 한 번에 알맞게 마시는 양은,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넣으면 된다.
처음 우릴 때는 물의 온도를 80도 정도, 두 번째부터는 90도 정도면 좋고, 1분이나 2분 정도 놓아두었다 마시면 좋다. 3분, 4분, 5분 이렇게 오래 놓아두면 써진다. 커피 잔에 차를 듬뿍 넣고 뜨거운 주전자의 물을 주르륵 따라 놓고 마시면 써서 마실 수가 없고 이롭지도 않다. 차의 향과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차의 향과 맛은 적당한 온도의 물에서 적당한 묽기일 때 제대로 우러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이 내 얼굴을 “해맑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차의 음덕일 터이다. 술 마신 이튿날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식전에 간단히 한 잔 하면 식욕이 생기고 식후에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 혼자 앉아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좋은 차를 잘 마시면 높은 혈압을 낮게 해주고 낮은 혈압을 높게 해준다고 들었다.
차를 마실 때는 참새 혀 같은 찻잎을 하나하나 땄을 손길을 생각한다. 찻잎은 밤하늘의 별빛에 입 맞춘 이슬과 푸른 안개를 마시고 신화처럼 자란다. 차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산야의 자갈밭에서도 자라고 산마루턱에서도 자란다. 그 찻잎을 뜨거운 불가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아홉 번이나 덖어 말렸을 손길을 생각하면 아무리 비싼 차라도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중 찻집에서 5만원 정도의 다구(주전자 사발 찻잔 5개)를 사다놓고 쓰면 좋다. 혼자서 마시는 일회용 찻잔(찻잔 안에 구멍 뚫린 작은 잔이 또 들어 있는)이 있는데 그것으로는 차 맛이나 향을 제대로 낼 수 없다.
커피가 동(動)적인 것이라면 차는 정(靜)적인 것이다. 정적인 차 속에는 움직임이 담겨 있다. 거친 움직임으로부터 돌아와 깊이 다소곳해진 여인의 가슴처럼 신묘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차라는 여인은 시끄러움을 싫어한다. 차의 향기와 맛을 제대로 음미하면서 마시려면 시끄러운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랬을 때 그 여인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순수한 삶의 길을 속삭여준다.
/한승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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